[한경에세이] 예술이 왜 필요할까

입력 2022-10-26 18:08   수정 2022-10-27 00:28

전 세계에서 축구를 잘한다는 사람들만 모인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지난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 덕분에 관심을 두게 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팀들은 저마다 우승을 위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빈자리를 볼 수 없는 관객의 함성이다. 삼대가 유니폼을 맞춰 입고 한 팀을 응원하는 모습이 나에겐 생경할 뿐이다. 무엇이 그들을 열광케 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입을 모은다. “내가 나서 자랐고, 이것만 봤기 때문이죠.”

이처럼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도 비슷한 열정이 있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의 루틴에서 출발했다. 턴테이블이 블루투스 스피커로 바뀌었지만, 심장을 달구는 음악은 여전하다. 아침을 여는 현악기 선율은 모차르트가 살던 그곳으로 나를 이동시킨다.

공연예술의 경외감은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물었다. 문화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즐거운 비명도 있지만, 라이브로 연주를 들으려면 엄청난 가격을 내야 하는 부담감은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 ‘1000원의 행복’이다. “1000원으로 공연장에 갈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기획한 사업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한 이들은 없게 만들고 싶었다. 이들을 무대 앞에 끌어내는 것은 평생 고민해온 숙제였다. 낯선 경험이 익숙해질수록 예술의 감동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 세계에 위상을 떨친 K산업의 쾌거가 연일 들뜨게 한다.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일들이 현실이 됐다.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넷플릭스의 한 드라마는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만의 성공이라 말하지 않는다. ‘기생충’ 뒤엔 순수미술에서 탄탄함을 갖춘 미술작가가, ‘오징어게임’엔 연극인 오영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순수예술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누군가의 뜨거움엔 어린 시절에 터득한 경험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K산업엔 순수예술이 밑바탕에 있었다는 것을….

당장의 돈과 명예를 좇을 순 없어도 이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유년기의 기억 덕분에 먹고 자란 열정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대한민국 문화산업의 성공은 순수예술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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